옛길소개영남길죽주산성길

영남길

제8길죽주산성길(황새울입구정류장 ~ 죽산면소재지)

화려한 고려문화의 향기, 죽주산성길
용인의 석천리에서 출발하여 아기자기한 마을길을 지나면 봉황이 비상하는 형세의 아름다운 비봉산 숲길로 진입하게 됩니다. 비봉산 정상에서 과거 궁예의 배후지였던 죽산의 멋진 풍광을 지나면 죽주산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죽주산성은 신라 때 내성을 쌓고, 고려 때 외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세겹의 석성이 지금도 남아있고 보전 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죽주산성을 내려오면 매산리로 접어드는데 매산리는 과거 죽산 지역으로 다양한 고려문화재 자원이 남아있어 고려문화의 향기를 진하게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소요시간
4시간 30분 (13km)
  • 백암면 석천리
    황새울마을
  • 비봉산
  • 죽주산성
  • 매산리 석불입상
  • 봉업사 당간지주
  • 죽산면소재지
  • 스탬프
    죽주산성
  • 난이도
  • 택시
    GG콜택시
    1688-9999
이용가능한 화장실
(북→남)   ①죽주산성 휴게소   ②죽산면사무소, 죽산시외버스터미널
대중교통
  • ● 주요 버스노선 황새울 마을 : 황새울 입구에서 37-4번 이용, 덕은마을에서 35-1번이용, 장평삼거리에서 10-4번, 35번, 35-2번을
    이용하여 백암터미널로 이동
    죽산면소재지 : 죽산시외버스터미널
    고양화정, 공도, 대림동산, 동서울, 백암, 부천, 서수원, 서울남부, 성남, 송탄, 수원, 안산, 안성, 안양, 양지, 양평,
    여주, 오산, 이천, 인천, 좌전, 태평리, 평택
문화재 안내
  • 봉업사지(경기도 기념물 제189호)/ 봉업사지 당간지주(경기도 유형문화재 89호)/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435호)

    봉업사지는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입니다. 봉업사(奉業寺)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경기도 3대 사찰로 꼽히는 거대 사찰이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갔다가 1363년(공민왕 12) 청주를 거쳐 올라올 때 이 절에 들러 태조의 어진(초상화)에 인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봉업사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초상화를 봉안한 진전사원(眞殿寺院)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봉업사지는 오랫동안 죽산리사지로 알려져 오다가 1966년 경지정리 작업 시 출토된 유물의 명문을 통해 봉업사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경기도박물관의 3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화차사(華次寺)’가 고려시대의 봉업사로 변환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청주호족 능달이 관여하였고 고려 광종 때인 963년과 967년에 중창되어 크게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1530년 문헌에 의하면 이때에 이미 봉업사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봉업사가 사라진 터에는 그때의 영광을 그려볼 수 있는 보물 제435호 봉업사지오층석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8호 봉업사지삼층석탑, 제89호 봉업사지 당간지주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봉업사지 인근에는 칠장사, 관음당의 장명사지, 미륵당의 매산리사지 등이 남아있어 죽산지역의 불교문화가 융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매산리 석불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매산리 석불입상은 높이 3.9m의 보살상으로 머리에는 보관(寶冠)이 높이 솟아 있는데, 고려 초기 보살상에서부터 흔히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얼굴은 넙적하고 눈·코·입은 비례가 맞지 않아 독특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러한 토속적인 얼굴은 높은 관과 더불어 보살상의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듬직하고 우람하게 표현된 이 거구의 보살상은 개태사 석불입상(보물 제219호) 등 고려 초기 석불상들과 함께 당시의 대표적인 석조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 죽주산성 (경기도 기념물 제69호)

    죽주산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비봉산정에 있는 고려시대 성곽입니다. 둘레 1,688m, 높이 2.5m의 토석성으로 현재 석축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처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지며 고려시대에 크게 중수하였습니다. 죽주(竹州)는 죽산(竹山)의 옛 이름이고 그 죽산의 매봉 위에 죽주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신라 때 산 정상에 270m둘레의 작은 성을 쌓았던 것을 그 후 고려 때 그 밖으로 1.5km의 외성을 다시 쌓았으며, 본성 1.7km가 또 있어서 보기 드문 세 겹으로 된 견고한 석성이고 지금도 보존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신라 후기 진성여왕 때 견훤이 이 성에 진을 치고 세력을 키웠으며, 고려시대 고종 23년인 1236년 몽고군의 제3차 침입 당시에는 방호별감 송문주가 성 안에 피난해 있던 백성들과 합세, 몽고군과 싸워 이긴 전적지이기도 합니다. 당시 몽고군은 이곳 죽주산성에 이르러 고려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면서 공격하였으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청주와 충주의 두 길이 만나 서울로 통하는 요지인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성을 보수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여기에 진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상세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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